나성순복음교회
진유철 목사
2016-03-20
1등석을 탈 수 있는 비행기와 3등석을 타야하는 비행기가 있다면 어느 비행기를 타겠습니까? 하지만 이 질문은 올바른 질문이 아닙니다. 1등석이냐 3등석이냐, 자리의 편안함 이전에 내가 가야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편리한 1등석이라도 엉뚱한 곳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 되겠습니까? 3등석이라도 안전하게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당연히 올바른 것입니다.
이전에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도 않는 사람이 오히려 1등석 비행기를 탄 사람처럼 편안하고 당당해보이고, 신앙생활 제대로 하는 나는 그보다 못한 3등석 비행기를 탄 인생 같아 보여 마음으로 힘들어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도 원망이 내 속을 채우고 목을 넘으려고 할 때, 하나님은 확실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이 탄 그 비행기는 목적지가 너와는 다른 비행기란다.’ ‘…….추락할 비행기인데 그래도 1등석 타고 갈래?’
비행기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길은, 아무리 힘들고 좁은 길이라 할지라도 원하는 목적지로 가는 길이 좋은 길입니다. 평탄한 길, 넓은 길을 가는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고 바른 길을 가는 한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란 바로 그 길을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길, 진리와 생명의 길이 되어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냥 도로가 아니고 티켓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인격이십니다. 그러니까 참된 신앙은 교회를 왔다 갔다만 하거나 사람에게 보이는 직분이나 업적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의’로 쓰인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는 ‘관계’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만이 천국이라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하는 올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왜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시119:71)고 고백하겠습니까?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구하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참된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났던 탕자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의 열매조차 배불리 먹을 수 없는 고난을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집에서 편안한 일상 가운데 지내는 맏아들은 항상 자기중심적이서 아버지와의 인격적 관계를 이루지 못한 체 자기 입장에서 불평만 쏟아 부었습니다. 누가 아버지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었습니까? 누가 우리 신앙의 모델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까?
신앙생활은 편리가 아니라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깊이 이루어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혹시 나는 벽 안에 갇힌 듯 외롭고 답답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나온 ‘나’만 느껴지고 하나님의 임재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육신적이고 혼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편리를 내려놓고 주님과의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해 도전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 어떤 것보다 크고 위대하신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인한 참된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