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림과 신앙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창세기37: 28)
2015.06.28
요셉의 기사가 시작되는 창세기 37장을 보면 형제들의 미움을 사 요셉이 젊은 나이(17세)애 애굽으로 팔려가는 기사가 동화적 스토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팔림과 관련한 동사가 세 번 나오는데 요셉이 세 번 팔린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위의 본문에 나오듯이 유다가 주동이 된 형들에 의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판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마엘 상인들에 의해 애굽 왕의 신하인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되판 것입니다.  세 번째 판 사건이 문제가 되는데 보디발이 요셉을 다시 누군가에게 판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더 이상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필자가 요셉은 세 번 팔렸다고 하는 것은 그 팔림은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간접적 방식이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공이 누구일까 독자들이 먼저 추측해 보실 수 있기를 바라맞이 않습니다.  필자가 지목하는 그 당사자는 아버지 야곱이라고 감히 지적합니다.  반대하는 분들은 그 마음을 잠시 간직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셉을 판 세 번째 주인공이 아버지 야곱이라고 했지만 사건 진행 상으로 보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요셉을 판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돈을 받고 직접적으로 판 것은 아닙니다.  정황상 팔릴 수 밖에 없는 환경으로 밀어 넣었다는 점에서 판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하나는 형들을 찾으러 혼자 보냈다는 점입니다.  혼자의 여행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는 야곱 자신이 젊은 시절 외삼촌 댁으로 피난을 하던 때에 경험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보냈다는 것은 팔리도록 조장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여행길에 채색 옷을 그대로 입고 가게 했다는 점입니다.  패션 쇼에 나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신분과 부티를 드러내 자신을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시켜 버린 결과입니다.  형들도 채색 옷 때문에 미움이 되살아 났을 정도인데 노예 무역상들에게는 최상의 상품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을 판다는 것은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지만 종이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종이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자유와 의지의 상실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끝없이 순종과 수고만이 요구되고 고난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라서 누구도 원치 않은 길입니다.  인권과 인륜을 부정하는 반인륜적 범죄여서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금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신 매매 제도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오늘날에는 장기 매매, 성 매매 등으로 진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만큼 역사가 장구하다는 사실은 그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놀라운 점은 신앙적임 면에서 노예나 종이 되는 것이 장려되었다는 점입니다.  참 신앙인이 되려면 자발로 종이나 노예가 되어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의 삶을 연역법적으로 추적해 보면 그 점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들이 팔리도록 방조한 야곱의 신앙 계승 훈련은 Tough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팔려가 종과 노예가 된다는 것은 시편 기자가 말한 대로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유례를 배우게 되는 것” 이상의 신성한 사명이 있다는 점입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 시골에서는 돼지를 키워 팔곤 했는데 파는 집은 다시 새끼를 사다가 키우곤 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파는 것 못지 않게 사는 것의 중요성을 행동으로 실천한 것인데 그 원리가 신앙 안에서 엄중한 교훈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성경 속의 파고 파는 거래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거래를 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은전 삼십에 팔린 것은 유다의 간계 때문이 아니라 만유를 피 값 주고 사시기 위한 영적 거래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래의 마에스토로이셨습니다.  성도는 모두 사단에게 팔린 바 되었다가 예수님의 자신의 생명을 드려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다시 사신 바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점을 황송 감읍하게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한 알의 밀알의 사명의 감당해야 하는 책무는 거룩한 예수님의 직거래에 기인한다는 점의 명심보감입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기사가 시작됐다고 38에 기서는 난데없이 유다의 행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과 성 매매를 한 추문의 사건을 왜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글을 보았습니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파는 일에 주동자 역할을 한 장본인입니다.  열등적 시기심에서 비롯된 팔고사고의 거래는 항상 악한 패턴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그 사건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팔린 요셉의 거래에는 정 반대적인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후에 양식을 사러 온 형제들과 극적인 해후 장면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죄 때문에 몸 둘 바를 모르는 형들에게 “나를 애굽에 판 것을 근심하고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려고 나를 먼저 보내셨다”라고 도리어 위로했습니다.  영적 상거래 질서의 확립이자 신앙 안의 사고파는 것의 로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www.kdcweb.org/250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