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순복음교회
2015-09-13
당시 남미의 작은 변방 도시에서 시작한 사역이 조금씩 교회의 모습을 갖추어갈 때쯤, 과연 이런 곳에서도 세상에 빛을 발하는 주님의 교회가 될 수 있을까, 하나님이 기뻐하실 선교가 가능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염려와 괜한 의심들이 가슴을 채우곤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혼자서 여호수아서 14장을 읽고 있는데, 나이 85세의 갈렙이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힘든 산악지역 헤브론을 앞에 두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자원하여 도전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정리하는 마음으로 매달 배달되는 소포를 뜯어 한국에서 온 기독교 월간지를 우연히 펴보았는데 한 실화 이야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 유전에서 석유시추선이 폭발하여 168명의 목숨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는데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한 사람, 엔디 모칸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1988년 7월, ‘그가 한참 잠이 들어 있었을 때, 잠결에 들리는 엄청난 폭발음 소리에 본능적으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때 그의 눈앞에는 거대한 불기둥이 곳곳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치솟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피할 곳이라고는 없었다. 순간 그는 배의 난간을 향해 전력을 다해 뛰었다. 하지만 바다 역시 새어나온 기름으로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가 바다로 뛰어내린다 하더라도 길어야 30분 정도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구조되지 않는다면 살기를 포기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더욱이 배의 갑판에서 수면까지는 거의 50미터 높이였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두려웠다. 그러나 머뭇거림도 잠시, 그는 불꽃이 일렁이는 차가운 북해의 파도 속으로 몸을 던졌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그 순간, 그는 불타는 갑판에 남아 있는 쪽이 아니라 바다로 뛰어내리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죽을지도 모르는 가능한 삶’으로의 선택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세상은 결국 ‘확실한 죽음’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도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의 눈으로 보면 ‘죽을지도 모르는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가능한 삶’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그 때 저는 교회와 성도를 위해 의심이 들기는 하지만 말씀을 선택하겠다는 뜨거운 결단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 이후로 기적 같은 교회당 헌당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고 매 주일마다 성도들의 섬김이 있는 원주민 예배를 드리게 되었고 많은 복음 증거의 기회들과 주님이 주신 승리들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미혹과 거짓이 너무나 강력하게 역사하여 믿음의 선택이 더욱 힘든 때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불길 속에서 그냥 머무르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비록 아직 의심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쪽을 선택하여 몸을 던져야 합니다. 저는 주일 밤 비행기를 타고 호주의 문화교육도시인 멜버른에 집회를 인도하러 갑니다. 다이렉트로 16시간이 걸리는 긴 비행기를 타야 합니다. 시간과 계절도 이곳과 정반대입니다. 그래서 주일 밤 출발하는데 화요일 그곳에 도착하게 됩니다. 금요일 밤 집회가 끝나고 토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 이곳은 토요일입니다. 쉽지 않은 집회일정이지만 그래도 선택하여 몸을 던지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쪽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가정을 향한, 직장과 사업을 향한, 유학생활과 이민생활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의심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반드시 말씀을 선택하여 몸을 던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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