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좋은 귀

감사한인교회
김영길 목사 
2016-01-31 
얼마 전부터 아내가 “여보, 내 말 안 들려요?”하는 말을 자주 하면서, 청각검사를 한 번 받아보자고 권했습니다. 처음에는 못들은 척하고 지나갔으나 자주 듣다보니 혹시 내 청력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먼저 자체검사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귀는 여전히 잘 들렸습니다. 오히려 너무 민감해서 안 들어도 될 소리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하는 말을 못 들었을까 싶어서, 조금 전에 나에게 했던 그 말을 똑 같은 크기로 다시 해보라고 아내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잘 들렸습니다. 안들리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내가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 아내의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듣고 싶은 말과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무의식중에 내 귀가 구별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어떤 진리를 설명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반드시 덧붙이시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은 단순한 청력(聽力)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으려는 의지력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에 없는 진리일지라도 들으려고 하는 자의 귀가 닫혀 있으면 그 말씀은 단순한 소음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범위가 있습니다. 너무 빠른 주파수는 초고음이어서 들을 수가 없고 너무 낮은 주파수는 초저음이어서 들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은 자기 듣기에 편안한 소리만 듣게 된다는 말입니다. 듣기에 편한 말은 단순한 주파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기 자랑을 길게 늘어놓을 때에 사람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귀가 듣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청각장치“,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들을 귀“입니다. 우리의 심성 속에 있는 “청각장치“는 남이 자랑하는 소리뿐만 아니라 남이 하소연하는 소리도 듣기 싫어합니다.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자랑과 다른 사람의 하소연을 위아래로 거절하고 남은 중간지대가 있습니다. 거기는 우리에게 편리하고 편안하고 유쾌함을 주는 영역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자랑할 때에 마음속으로 “하나님, 저 사람의 생애에 저런 축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면서 들으면 기쁨으로 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소연할 때에 “주님 지금 이 사람의 하소연을 듣고 계시지요? 좀 도와주세요.”하는 마음으로 들으면 부담 없이 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들을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인가 그를 위하여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들을 수 있는 범위가 넓으면 넓을수록 건강하고 좋은 귀입니다. 이런 귀를 열어주시라고 주님께 기도하십시다.